말과 행동이 일치한다고 꼭 아름답지만은 않다. 정답은 없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죠.   디오게네스그리스의 철학자. 키니코스(Κυνικοί)[1] 학파로도 불리는 견유학파(犬儒學派)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견유학파는 말 그대로 그냥 방랑하는 개처럼 권력이나 세속적인 일에 속박되지 않고, 자급자족하며 단순하고 간소한 생활만을 추구하는 학파인데, 디오게네스 역시 그런 견유학파 정신을 받들어 그냥 들개처럼 거리에서 노숙하거나 통 속에서 살면서 권력과 세속에서 벗어나려 했다고 한다.플라톤과의 관계로 유명한데, 둘은 당시 꽤나 유명한 앙숙 사이였다.[2] 이에 관한 두 가지 에피소드가 있는데, 어느 날 플라톤이 토론을 하며 인간을 “두 발로 걷는 깃털 없는 짐승” 이라 정의하는 일이 있었다. 그러자 디오게네스는 털 뽑은 닭을 들고와서는 “이게 플라톤이 말하는 인간이다” 라는 말을 함으로써 플라톤에게 공개망신을 준다. 이후로 플라톤은 항상 인간에 대해 설명할때마다 “손톱과 발톱을 가진” 이라는 말을 앞에다가 첨가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플라톤이 항상 욕망을 버리고 살라는 말을 하는 주제에 큰 집에 사는게 못마땅해서 어느날 진흙투성이 발로 플라톤의 집에 들어가서는 침대를 짓밟아놓고 나왔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다만 플라톤은 별로 의식을 안했는지 사람들이 “디오게네스는 뭐하는 놈이오?”라고 묻자 플라톤은 “미친 소크라테스이다.”라고 대답했다.그리고 어느날은 알렉산드로스 3세가 디오게네스의 소문을 듣고 디오게네스를 찾아왔는데, 알렉산더 대왕이 “소원이 있으면 말하라” 라고 하니 디오게네스는 “그럼 햇빛 가리지 말고 저리 가시오” 라는 대답을 한다. 알렉산더 대왕의 부하들을 당장 잡아서 처벌해야 한다고 했지만 이때 알렉산더 대왕은 “내가 만약 왕이 아니라면 디오게네스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라는 대인배적 대답을 했다고 한다.그외에도 길거리에서 대놓고 자위를 하고는 “배고픈 것도 이렇게 문질러서 해결되면 좋을텐데” 라고 말한 일화나(…), 하여튼 대부분의 일화들이 보통 인간의 상식에서 크게 벗어난 아스트랄을 달리고 있다. 왜 그러냐고 물으면 물론 견유학파니까…그의 제자 크라테스는 훗날 이런 스승의 학설을 가지고 “무소유야말로 모든것에서 벗어나는 비결”이라 하며 스토아학파의 탄생을 예고했다.최후도 꽤나 비범한데, 90세때 그냥 일부러 숨을 안 쉬어서 죽었다고 한다(…).또는 익지않은 고기를 먹다가 식중독으로 사망했다는 설도 있다. 그리고 그의 무덤엔 개집에 들어간 멍멍이가 부조되어있었다고도 한다.이렇듯 괴팍한 삶을 살긴 했으나, 사상작으로 보자면 매우 위대하다고 볼 수 있는 인물으며 특히 서양사 최초로 만민평등사상 혹은 사해동포주의를 주장했다는 점에서 찬사를 받을 수 있는 인물이다.[3] 지금에야 모든 인종과 사람의 본질과 자격이 동등하다고 여기는 것을 당연시하지만, 이러한 것이 정착된 것이 지금으로부터 채 백년이 되지 않는다. 당장 제 2차 세계대전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상기해보면 알것이다. 하지만 무려 2500년전에 디오게네스는 모든 사람의 본질과 자격이 인종 그리고 성별과 상관없이 동등하다고 보았는데, 이러한 그의 사상이 이 당시 얼마나 급진적이고 충격적이었는지는 당대의 두 대철학자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통해 알 수 있다. 플라톤은 여성을 동물취급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시아[4]인들은 철학할 머리가 없으므로 모조리 잡아서 노예로 삼아야 한다고 알렉산드로스에게 말했을 정도였다.중세 아랍에서는 소크라테스랑 구별을 못했기에 통속의 소크라테스라고 불리는 경우가 있다. 안습.아테네 학당 에서도 등장하는데 중간에 혼자 누워있는 양반이 디오게네스—-[1] 그리스어로는 개(犬)의 뜻이며 영어로 쓰면 cynic. ‘냉소적’이라는 뜻의 cynical의 어원이 되었다. [2] 여담이지만 디오게네스의 스승은 소크라테스 문하에서 철학을 공부한 적이 있었다. 말하자면 같은 스승의 계보에서 갈라져나온 셈. 하지만 소크라테스 사후 학계를 주름잡았던 것은 소크라테스로 비롯된 다양한 소(小)소크라테스 학파들이었기에, 딱히 특이할만한 일이 아니다. [3] 누군가가 그에게 출신이 어디냐고 묻자, ‘세계 시민’ (코스모폴리탄) 이라고 대답한 일화가 있다. [4] 페르시아를 의미한다   Vs   만일 인간의 힘이 역사의 연변 속에서 아무런 작용을 할 수 없다고 하면, 인간은 하늘에 의하여 이미 결정된 길을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따르는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위에서 말한 일종의 명정설(命定說)입니다. 신포서의 말은 다분히 이러한 입장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또 위에서 말한 천명사상도 이와 일맥상통합니다. 이것이 중국 사람들의 주류(主流) 사상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의지를 중시하는 사상도 물론 있었습니다. 순자(荀子)가 한 예입니다. 그는 인간의 의지와 그 힘을 매우 중시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옛 사람들은 『순자』를 읽으면 ‘人定勝天’의 무엇이 생긴다고 하였습니다. 즉, 자제력을 불러일으키게 되고, 스스로 단속하게 되어 해이(解弛)와 타락(墮落)에 이르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다소 자질이 떨어지는 사람도 『순자』를 공부하면 신념과 용기를 얻는다고 합니다. 한편 『맹자』를 읽으면 일종의 지기(志氣)가 발양된다고 하였는데, 아무튼 『순자』와 『맹자』를 읽으며, 천명을 극복하는 지혜가 생길지도 모릅니다.  지혜가 생기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이러한 생각의 현대적인 발로는 모택동(毛澤東)에게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는 마르크스의 생산력과 생산관계에 관한 경제적 결정론을 배격하고, 인간의 의지와 능력에 대하여 무한한 기대를 걸었던 것입니다. 어떠한 혁명도 인간의 의지에 따라 가능하다고 그는 믿었던 것입니다. 중국 대륙의 불행이었습니다. 대약진운동과 문화혁명도 여러 측면에서 분석하고 고려할 수 있는 사건들이지만, 모택동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무엇인지 조급한 생각에서, 말하자면, 일모도원의 심경에서 엄청난 일들을 저지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또 공자가 사랑하던 제자에 안회(顔回)가 있습니다. 공자는 그가 학문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하여 무척 아꼈습니다. 그러나 그는 끼니를 못 잇고 굶다시피 하다가 일찍 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