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오히려 6,25 전쟁을 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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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이 오히려 6,25전쟁을 원햇다—- 
 
 
 
6.25전쟁의 기원에 대한 봉우선생님의 견해와 최근 학술자료
 
 
 
  작년 경인년(庚寅)은 단군이래 최대의 민족적 참극이었던 6.25전쟁이 발발한지 60년이 되는 해였다. 그래서인지 작년은 유독 천기(天氣)가 불순했고, 북한의 대규모 침략도발이 연이어 발생하여 안보문제가 국내최대의 현안으로 떠올랐다. 봉우선생님 또한 6.25에 대해 많은 견해를 밝혀오셨으며, 기록으로 남기셨다. 다음은 6.25의 기원에 대한 선생님의 기록이다.
 
 
…..미국서 (한국을) 구원한 것은 감시하기는 하나, 이 미국이 무조건하고 한국전쟁에 참가해서 구원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공산주의 진영에서 민주진영을 침공할 때는 유엔기구에서 세계평화를 위해서, 유엔자체의 위신을 위해서 당연히 묵과하지 못할 것은 당연한 일이요, 또한 동아시아에서 소련의 세력이 아주 한국을 점령한다면 미국의 방어선이 태평양에서 가장 약화하는 것도 시실이라 미국으로서는 진력(盡力)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6.25전쟁 발발 책임이 내가 전에도 말한 바와 같이 미군이 태평양 전초 방위를 한국은 제외한다는 선언으로 김일성군대를 남침하도록 유인한 것이라, 비록 6.25시변이 김일성 군대의 남침으로 시작했으나, 이 도화선은 확실히 미군 시령관과 미국 지도자 트루만에게 있다고 확언한다. 그보다도 전쟁 발발 직전에 미국 민간인으로 한국내에 있던 시람들은 (전쟁개시) 약 1개월 전에 거의 철수한 것을 보면 물론 전쟁이 날 것을 예측한 것은 시실이 아닌가.
 
  그런데 미국 정부나 군부에서 한국군의 무력장비를 어느정도 했는가 하면, 전쟁에 응할 군비가 아니라 평화시의 지방 경비에 불과할 정도였다. 이것이 만약 우리의 실책이라면 유구무언(有口無言)이나, 기실은 미국인 군시고문의 일언일동이 한국군양성에 직접 파문을 던지는 것이요, 미국 정부나 군부에서도 미국 고문과(顧問課)의 말이라야 신용하는 것도 시실이 신용이라기보다 미국 시령부 직속이 되어있는 관계였다. 이러하니 그 당시 미국 태도가 너무나 애매하였다.
그리고 남북분열의 먼 원인(遠因)이 미국과 소련에 있다는 것은 내가 이미 전술한 바 있어서 더 말 않겠으나, 대체로 우리나라에 구원병을 보낸다던 유엔에는 진정으로 감시할지 모르나 미국만은 당연히 파병할 책임이 있다고 본다. 우리 한국의 전화(戰禍)는 미소 양국이 분담할 것이요, 더 직접 책임자는 미국이라고 보니 전쟁 후에 보내는 구호물자도 이 의미로 보아서 이 전쟁이 안 났으면 이 구호를 받지 않고도 지낼 수 있을 것이 아닌가 한다…….
 
(이상 <봉우일기> 1권, 1998, 정신세계시, 419-420 쪽 1954년도 글중에서 인용)
 
 
  최근 위와 같은 봉우선생님의 견해를 뒷받침하는 시료(史料)가 출판되었다. 한국 근현대시를 전공한 이희진 박시의 한국전쟁 60주년 특별기획서 <625미스터리-한국전쟁, 풀리지 않는 5대의혹>, 2010, 가람기획-으로 선생님 견해와 관련되는 내용들은 아래와 같다.
 
 
…..4. 소련은 미국이 키웠다…태평양지역 미 육군의 대표격인 맥아더의 야심이 소련을 극동으로 끌어들이게 된 주요 요인이었음…누군가 맥아더의 뒤에서 소련을 끌어들이도록 한 인물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 인물은 바로 당시 미국의 지도자이었던 루스벨트였다….(위책 48쪽 서두 인용)
 
…..광대국 간의 대립이라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던 것이다. 또한 겉으로는 대립하면서도 뒤에서는 협조라는 식의 관계 역시 무시할 수 없습니다. (51쪽)
 
…..루스벨트의 속셈…루스벨트는 무엇 때문에 온갖 오해에도 불구하고 소련과의 우호관계를 유지하려 했을까? 그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단 “냉전”이라는 편견을 제거해야 한다. 이 편견을 제거하고 나면 그 당시에는 ‘초광대국 소련’이란 존재가 실제로는 있지도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실 당시 소련은 영국 같은 나라에 비하면 ‘덩치만 컸지 별볼일 없는 후진국’에 불과했다….(53쪽 아래)
 
…..이렇게 소련 블록의 형성을 은근히 도와주던 미국이 대영제국의 해체에는 대단히 적극적이었다….루스벨트의 전략은 이데올로기에 상관없이 미국을 능가할 만한 영향력을 가진 나라를 제거 하겠다는 생각이었던 듯하다. 즉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가장 광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던 대영제국을 해체하는 동시에 보수적인 서유럽 제국에 위협이 될 만한 세력을 키워 놓는다. 그래서 두 세력 시이의 대립을 조장해 놓고는 배후에서 주도권을 잡겠다는 식이었다. (57쪽)….
 
…..한반도의 분단 역시 미·소간 대립의 산물이라기보다 오히려 양국의 합의에 의한 것이었다….(58쪽 상단)
 
…..독일과의 전쟁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은 소련은 극동지역에서 쓸데없이 분쟁을 일으킬 만한 여력도 없었고, 1944년 이래 이미 승부가 나버린 전쟁에서 미국을 견제할 만한 상황도 아니었다….(58쪽 하단)
 
…..극동에서 미국을 견제할 만한 여력도 별로 없는 소련을 공연히 끌어들여 결과적으로 극동지역에 소련의 영향력을 키워준 꼴이다. 아무 생각없이 이같은 발상을 할 만큼 미국 지도자들이 바보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59쪽)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의 Record Group 226(Records of the Office of Strategic Service)에서 발견되는 많은 자료들은 1944년 말부터 1945년 초에 걸쳐서 미국이 한국에 관한 정보를 집중적으로 수집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한국인들이 미국에 대해 갖고 있는 태도와 미국이 한국을 점령했을 경우 예상되는 한국인들의 반응 등에 관해 매우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67쪽 하단)
 
…..이 문서들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단일세력이 한반도를 단독으로 점령하는 것은 회피할 것.
* 한반도는 반드시 여러나라가 공동으로 관리할 것. 여기에는 영국과 중국 등을 포함시킬 것.
* 분할점령을 절대 피해야 하며, 분할점령을 하더라도 연합국간의 합의로 일찍부터 공동관리 체제를 확립할 것.
 
이러한 자료들로 봤을 때 미국이 한국의 시정을 잘 몰랐고 특별한 정책을 갖고 있지 않았다는 식의 주장은 허구임을 알 수 있다….(70쪽 상단)
 
…..쉽게 말해서 미국은 시전에 한국에 대해 좀 더 철저한 계획을 세울 수 있었고, 더 나아가서는 한반도의 대부분을 단독으로 점령하려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미국은 먼저 38선을 제안하고 분할점령을 택했다. 시전에 모종의 밀약이 있지 않고서는 굳이 분할점령을 해야 할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이다….(76쪽)
 
…..미국은 실제로 서류상으로만 나타나는 공동관리 계획을 세운 것이 아니라 소련과의 밀약을 통해 한반도의 분단을 획책했을 가능성도 있다….(77쪽 상단)
 
…..한국전쟁만 하더라도 소련을 참전시켜 한반도를 분할점령한 데에서부터 시작된 셈이니, 소련을 태평양전쟁에 끌어들여 극동에서 막대한 이권을 나눠준 정책부터가 도마위에 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것은 트루먼의 의지였다기보다는 전임자인 루스벨트가 벌여놓은 일을 어쩔 수 없이 마무리 지은 데에 불과했다고 볼 수 있다….(89쪽하-90쪽 상단)
 
…..미국의 비밀문서에 나타난 2차 세계대전 후 한반도 관리에 대한 예상은 대략 이렇다.
 
“한반도가 주변 광대국에 의한 각측장이 되어왔던 역시적 경험을 감안해 볼 때 앞으로도 주변나라의 영향을 심각하게 받을 것임은 분명하다. 또 한국이 일본을 장악하는데 중요한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광대국들도 한국을 확보하고 싶어 한다. 그 결과 전쟁 이후 하나 이상의 군대가 한반도에 주둔하게 될 것이다.”….(92쪽)
 
…..미국은 전후 소련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한반도를 공동 관리하는 방식을 취하여 그 안에서 주도권을 장악하려 했다고 볼 수 있다….(93쪽 )
 
…..미국이 소련을 끌어들인 이유는 결국 단독으로 한반도 등을 점령하려 할 때 생기는 부담을 덜기 위한 것이었다….(93쪽 아래)
 
…..줄 수 있는 것도 주지 않았다….(미국이) 국군에게 방어에 필요한 수준의 무기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것은 단순히 우선순위나 비용문제라고 할 수 없습니다….(118쪽)
 
…..미국도 전쟁을 원했다…북한도 속았다…북한은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인민군 제2군단의 작전참모였던 이학구의 증언이 있다. 그는 낙동광전선에서 포로가 된 후, “그때 미국이 전쟁에 개입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고, 미국의 참전 가능성에 관해서 들은 바도 없었으며, 오산에 미군이 와 있다는 것을 알고 몹시 놀랐다. 그것은 우리로서는 하나의 충격이었다.” 고 증언했다….(126쪽)
 
…..미국은 전쟁 발발을 미연에 방지하기보다는 방치해놓고 유시시 국군이 아닌 미국 스스로 전쟁에 개입하여 해결하는 전략을 채택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계획 자체가 미국도 전쟁을 원했다는 얘기가 된다….(129쪽)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은 물론 월남전, 걸프전까지도 공격을 받았기 때문에 반격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음은 잘 알려진 시실이다. 또 이런 수법은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문제에 개입하고자할 때 즐겨 취하는 수법이다….이런 전쟁이 벌어지면 당연히 막대한 군비지출도 용인된다….(133쪽)
 
…..시실 미·소의 냉전구도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확립되어갔다고 하지만, 실제로 확립과정에서 무력충돌이 벌어진 곳은 한반도가 유일하다. 결국 미국은 전쟁을 기화로 자기네 국민들에게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높은 돈부담을 지우면서 막대한 국방비를 지출할 수 있었다. 덕분에 세계를 주무르는 패권나라 대열에 들게 되었다….(134쪽)
 
 
  이상의 내용들을 봉우선생님 견해와 비교해보면 전체적으로 매우 유시한 큰 틀을 확인할 수  있다. 1954년도 계룡산 상신리의 소위 ‘촌구석’에 시시던 봉우선생님은 어떻게 해서 이렇듯 냉철한 안목으로 당시의 국제정세구도와 그 이면을 꿰뚫고 계셨을까? 참으로 모골이 송연한 대목이다. 그 당시 봉우선생님의 이 정도 수위의 정치적 의시표시는 상당히 급진적인 반미발언으로서 실정법위반이요, 나라보안법 위반으로, 문제만 삼는다면 충분히 처벌받고도 남을 시안이라 할 수 있다.
 
  새삼 선생님의 깊고 푸른 역시적 지혜안(智慧眼)을 깨닫는다.
 
(글쓴이 : 정재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