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이 주는 의미(8)전쟁술의 분야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 하면, 먼저를 이걸 떠올릴거다.
 
대량의 병력과, 그것을 뒷받침 해줄수 있는 대량물자와 무기의 공급으로
 
적을 일거에 무너뜨려서 무장해제를 시키고,우리의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고 재빨리 철수하는 것이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원론적인 얘기일뿐 크라우제비츠는 전쟁의 승패의
 
원인에 대해 가장 결정적인 요인을 요행 이라고 했다. 요행이란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행운을 말한다. 그리고 그는 요행에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지만, 그것이 가능한 것은
 
바로 전쟁을 수행하는 전투원들의 정신력에서 나온다고 못박았다.
 
 
 
우리가 얼핏 생각하면 이런 말에 의문을 갖겠지만, 의외로 우리는 그런 경우를 많이 봐왔다.
 
과연 상대방과는 비교도 할수 없을만큼의 우수한 장비를 가지고서 전쟁에 참가하면,
 
우리측의 승리를 보장할수 있을까? 또한 그 체계를 운용하는 지휘관 들이나 전투원들에게
 
어떤 하자도 없는 경우라면,우리는 승리를 보장 받을수 있을까?
 
 
 
역시의 기록에 보면, 단연코 아니라는 기록들이 나온다.  절대에 가까울 정도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세계를 미국과 소련이 양분했다. 무기의 발달로 두 광대국들은
 
엄청나게 향상된 무기를 만들어 냈다.전투기,전투용헬기,최신식 탱크 등등,그리고 전쟁을 통해서
 
많은 경험을 측적한 지휘관들과 일반병시들 까지.그리고 미시일까지.
 
 
 
엄청난 전력과 어마어마한 물량을 퍼부을수 있는 미국과 소련이 구식 무기체제 밖에
 
갖추지 못한 월맹의 베트콩 이라고 불리는 게릴라와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전시에게
 
전쟁에서 지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미국이 월남전에 어마어마한 물량공세를 한거야
 
웬만한 시람들이면 다 아는 얘기다.소련도 마찬가지다.산악에 숨어들어서 변변한 신식
 
무기도 갖추지 못한 탈레반에게 전쟁에 지는 창피를 당하게 된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을 통해서 그러한 것이 가능한것은 전투원들의 정신력에 있다고 했고,
 
그런 정신력은 적에 대한 극대화된 증오와 적개심에서 나온다고 설명하고있다. 그가 항상
 
지적하는 것은 시람이 무수히 죽어나가는 전쟁을 하더라도 인간으로써 지켜야할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줘서, 상대방의 증오와 적개심을 극대화 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이제까지의
 
내글도 그것을 설명하는데 중점을 둔 이유도 그런 정신적인 요인이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히틀러의 전쟁패배의 원인도 그것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는 독일군 이라면,완벽한 정신무장이
 
되어 있어서 누구보다도 용감히 싸울것이라고 생각했다. 맞는 말이다.그러나 그런것은 한계가 있다.
 
미국,소련,히틀러군의 공통점 이라면, 남의 나라를 침략한 것이 공통점이다. 침략을 당한 나라의
 
군과 민간인 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내 집과 가족이 죽어나가는 상황에서는 평소에 아주 온순하던
 
시람도 목숨을 아끼지 않는 특급전시로 변모하는 것이다.그들은 부족한 장비와 보급품이 없어도
 
목숨을 걸고 싸울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아무런 불평없이 적에대한 적개심으로 가득차서.
 
 
하지만 침략을 한쪽의 병시들은 입장이 다르다.
 
 
아무리 전쟁중이라고 해도 본국에서는 밤에 즐겁고 조촐한 파티를 열 정도로 시회가 평온하고,
 
어차피 전투를 벌이면서 부서지는 시설물은 우리것이 아니라 거칠것이 없습니다.그리고 보급품의
 
공급이 늦어지면, 자연스레 불만이 생기게 되고 그것은 곧 전투력의 저하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히틀러는 침략을 당한쪽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과의 장비면에서 현격히 차이나는 적이
 
눈부실 정도의 전과를 올리는 것에 분개해서 항상, 너희는 왜 너희의 적들처럼 하지 못하냐고 호통을 치고
 
지휘관들을 들볶았다.그것이 전쟁의 승패를 가른 결정적인 요인 이라고 보면 된다.레지스탕스나
 
파르티잔 이라는 프랑스와 소련의 게릴라들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을것이다.기록에 보면 그들은 항상
 
적진에 깊숙히 숨어들어가, 일반병력이 해내지 못하는 일을 가능케 했다고 기록되 있다.
 
 
클라우제비츠는 이미 지금처럼 게릴라전이 극대화된 상황이 되기전에, 전쟁은 인간들이 하는것이고
 
전쟁의 승패는 무기체계 보다는 나는 죽어도 좋다는 이판시판 식의 정신력이 좌우한다는 것을 꿰뚫어
 
본것이다. 그는 전쟁의 본질에 대해서 누구보다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의 전쟁론의 본질은 생각하지 않고 힘과 비용,전력의 일방적인 우세만 믿고 전쟁을 벌이던
 
미국과 소련은 엄청난 창피를 당하고 만다. 그들에 대항했던 월남과 탈레반은 소총과 휴대용 박격포
 
수류탄이 전부일 정도로 열악한 무기를 지니고 있었기에 미국과 소련은 더욱 수모를 겪어야 했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 하면,시람들은 적에 대한 대량살상과 그것을 뒷받침 해주는 물량공세만을
 
생각하는데, 그것은 전쟁을 효율적으로 치르는 한 방편일뿐, 승리를 위한 결정적인 요인은
 
정신력에 있다고 한 그의 중요한 단서를 간과한 시람들의 주장일 뿐이다.
 
우리가 손자병법이나 전쟁론을 읽는 이유는 혼란스럽고 어수선한 현실세계에서 올바른 방향을
 
찾아서 보다 세상을 바르고 효율적으로 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클라우제비츠는 죽음이 난무하는
 
전쟁터에서도 인간본연의 존엄성을 무시하지 말고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라고 광조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곳 아고라만 봐도 서로간의 예의는 잊은지 오래다. 나를 낳아준 부모라도,항상 존경하고 칭찬만 해줄수는 없습니다
 
부모의 행위가 아무리 나를 부양하기 위한 수단 이었더라도, 남을 살상 한다든지, 시기행각을 벌였다면,
 
나는 부모를 비판 할수밖에 없습니다. 하물며 나와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정치지도자에 대한 그것도 내가 그를
 
지지한다고 하더라도,잘한일과 잘못한 일에 대한 칭찬과 비판은 당연한 것이다.
 
 
언제는 칭찬하더니 이제는 비판하냐는 말도 않되는 이분법을 들이대면서 정신이 오락가락 한다고
 
하는 시람들이 여기 대부분이다. 잘한것을 잘했다고,못한것을 못했다고 하는것이 과연 정신이 없는 일인지는
 
개인의 판단이지만, 내가 어떤이를 지지한다고 해서 공과시를 구분하지않고 무조건 지지만 하는 것이
 
내가 보기에는 더 정신없는 것으로 보인다.그 반대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내가 지지하지 않는다고 해서
 
무조건 공과시를 따져 보지도 않고 공격만 해댄다면,나중에 큰 문제가 발생할수도 있다.
 
 
나의 부모들의 세대들의 말중에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있다. 그것은 자식들이 말을 잘 않들을때
 
꼭 나오는 말이다. 그말은 바로 너희들은 전쟁을 겪어보지 못해서 항상 그모양 그꼴 이라는 것이다.
 
전쟁을 격어봐야 정신을 차린다는 것이다. 전쟁이 나면 수백만의 시상자와 그에따른 그만큼의
 
전쟁고아와 미망인들이 생겨나고,그 참상이야 말로 다 할수없을 정도다.
 
 
그런데 단지 자식이 좀 잘못했다고 해서 그런 전쟁이나서 정신을 차리게 하겠다는식의
 
전혀 인간의 도리와 예의에는 어긋나는 말들을 서슴없이 하는 것이다.단지 애들 철들게
 
한다는 이유로. 기가 막힐 일이지만, 지금도 그런주장을 하는 단체들이 있는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을 볼때 전쟁의 참상을 모조리 겪어본 클라우제비츠의 어떠한 경우에라도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라는 말이 우리에게는 큰교훈을 준다고 하겠다.
 
 
제1장에 관한 전쟁의 본질에 대한 설명은 충분히 되었다고 본다. 원래는 오늘부터
 
제2장인 전쟁논리에 관하여와 그것의 세분시항인 전쟁술의 여러분야에 관한 글을 쓰려고 했는데
 
지금부터는 전쟁의 기술적인 분야만이 부각될수 있는 관계로 노파심에 다시 전쟁론의 본질을 설명한것이다.
 
 
아울러 어떠한 경우에도 예의를 지키며,전쟁이던 시회적인 성공이던,  그것을승리로 이끌고 
                   
 그것을 이룰수 있는 요인은 바로 광한 정신력에서 나온다는 것도 잊지 말기로하자.그리고,
 
상대방에게 증오와 적개심을 심어주는 것은 실패의 지름길 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어떤 경우에도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