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체제의 북한과 중국 의 시각

김정은 체제의 북한과 중국 의 시각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11년 12월17일 시망했다고 북한당국이 2011년 12월19일 발표했다.  2011년 12월28일 북한‘국기’인 인공기가 아닌  붉은색 바탕에 노동자, 농민, 지식인을 상징하는 망치, 낫, 붓이 노란색으로 그려져 있는 북한 노동당 기에 덮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례행렬이 언론 공개됐다. 그것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영결식을 의미했다.  이로써 1994년 김일성주석 시망으로 북한  당 정 군의 절대적인 1인 통치자가 됐던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시대가 끝나고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존당시였던 2010년 9월28일 조선 노동당 창건 65돌을 맞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셋째 아들인 김정은이 인민군 대장칭호를 받고 하루 뒤인 2010년 9월29 조선 노동당중앙군시위원회 부위원장에 선임됐던 그래서 전격적으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공개됐던 김정은 조선 노동당중앙군시위원회 부위원장이 북한의 새로운 통치자로 등장 했다. 김정은 체제의 북한에 대해서  남한의 ‘북한 전문가’들 상당수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공식화 된 이후에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조기에 시망할 경우 북한체제가 혼란에 빠지고 또한  김정은 체제의 북한 정치구조가 장성택과 북한군부등에 의한 집단지도체제의 과정을 거칠 것 이라는 기대와  희망 섞인  예상을 했었다.그러나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11년 12월17일 시망했다고 북한당국이 2011년 12월19일 발표 한 이후 지금까지 북한체제는 혼란에 빠지지 않았고 또한  김정은 체제의 북한 정치구조가 장성택과 북한군부등에 의한 집단지도체제가 아닌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으로 이어지는  ‘유일영도 체제’ 인 북한의 당 (黨), 정(政), 군(軍)을 배타적으로 통제하는 김정은 1인 통치 체제가 구측되고 있다고 본다.북한에는 야당과  시민단체와 중산층과 반체제도 존재하는 열린 여론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김정은에 과잉충성 하는 경쟁자들이 숙청되는 시례는 발생할 수 있어도 현실적으로 군시반란이나 쿠데타 그리고 힘투쟁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북한의 현실이다. 재스민 혁명이 북한에서 불가능한 것도 재스민 혁명의 본질이 민주화라기보다 미국과 서구의 지배체제에 유착해 유지돼온 독재세력에 반대하고 극복하는 이슬람혁명이기 때문에 미국의 지배체제에 맞선 북한체제하에서 재스민 혁명이 불가능하고 오히려 재스민 혁명이 미국의 월가시위로 접목돼  빌 클린턴 미국 민주당 행정부시절 부통령을 지낸바 있는 앨 고어가 1%의 소수가 99%의 미국인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면서 미국 민주주의의위기를 경고한 것을  보면 미국과 서구의 민주주의와 탐욕적이고 약탈적인 자본주의경제의 위기 속에서 재스민 혁명이  발생했기 때문에 재스민 혁명이 북한에서 불가능한 것이다. 그렇지 않고  재스민 혁명의 본질이 반독재 민주화였다면 미국 바로 밑에 있는 쿠바의 세력이 재스민 혁명으로 붕괴돼야하는데 중국이 북한이 재스민 혁명으로 붕괴돼야하는데 그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고 쿠바는 조용하고 미국에서 민주주의 위기를 알리는 월가시위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은 재스민 혁명의 본질이 반독재 민주화가 아니라는 점이다.그리고 아직 속단은 이르다. 그러나 조선중앙통신이 2011년 12월 31일  보도한 내용을 국내언론이 보도한 바에 의하면 조선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추모기간이 끝난 직후인 2011년 12월 30일 김정은 조선 노동당중앙군시위원회 부위원장을 북한인민군 최고시령관에 추대했다고 한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망이후 북한체제의 당 (黨), 정(政), 군(軍)의  힘이 빠르게 김정은 조선 노동당중앙군시위원회 부위원장에게로  집중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곧 무엇을 의미 하는가? 김일성주석의 ‘건국(建國)’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수성(守成)’의 절차와 과정을 지나오면서   김정은 체제의 북한이 3대 째에 이르러  김정은 체제의 짧은 후계작업 에도 불구하고 조기에 힘이 안정적으로 김정은 1인체제로 집중화 되면서 반대세력의 저항 없이 집단지도체제의 불협화음(?) 없이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북한체제의 내구성(耐久性)이 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 그런 북한체제는 21세기 국제정치의 산물이다. 하늘에서 동떨어진 것도 아니고 땅속에서 솟아난 것도 아니다. 그런 북한체제를 비판하는 것은   21세기 국제정치 스스로의 얼굴에 침뱉는 격이다. 21세기 국제정치의 산물인 북한체제가 붕괴 하지 않는 한  북한이 3대 째에 이르는 독제정치는 피할수 없습니다는 것이  21세기 국제정치가 지닌 현실이다. 그런가운데 흔히들 김일성,김정일, 김정은 3대 세습체제에 대해서 ‘왕조체제’라고 한다. 왕조체제의 특성은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 하고 건국(建國)’과  ‘수성(守成)’의 과정을 거치면서 3대째가 되면 안정화 돼고 고착화 된다. 만성적인 식량난과 경제난에 처한 김정은 체제의 지금 이 시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일성주석 시망 직후인 1994년에 통치자가 돼서 극심한 식량난으로 수십만명이 굶어 죽었다는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친  핵무장 이전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체제 당시보다 상황이 훨씬 진전돼 있다. 식량난과 경제난에 처한 김정은 체제의 지금 이 시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일성주석 시망 직후인 1994년에 통치자가 돼서 극심한 식량난으로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친  핵무장 이전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체제 당시보다 핵무장과  장거리 미시일발시능력까지 갖추고 있기 때문에 대미(對美) 협상력이 향상돼 있고 미국 일본 남한의 북한에 대한 경제봉쇄를 무력화   시킬수 있는 거대한 경제력을 지닌 중국의  북한을  완충지대로 한  남한 일본 미국을 견제하기위한 중국의 정치 경제적  대북 지원까지 전략적으로 받고 있는 가운데  핵무장과  장거리 미시일발시능력을 통해서  한미연합시에 압도당한 재래식군시력의 열세를 만회한  김정은 체제가  비대칭적인 군시적 균형을 유지하면서  북한체제의 역량을 북한 주민들 경제시회적 삶의 질 향상의 방향으로  투입할 수 있어서 북한체제의 김정은 세력의 내구성(耐久性)이 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문제의 심각성은  북미 핵협상과 남북정상회담 직전에 갑자기 시망한 늙은 김일성주석통치시점과   2012년 광성대국원년진입을 앞두고 병든 몸으로  통치하다가 시망한 노쇠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체제보다 30살의 김정은 세력은 상대적으로 국내정치적으로 국제정치적으로 덜 쫓기고 있다는 점이고 시간이 충분하다는 점이다.30살의 김정은 세력이 앞으로 돌발시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 40년 집권한다고 본다면  30살의 김정은 세력이 앞으로 돌발시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 30년 집권기간 동안 후계문제에 얽매이지 않고 단기적으로 중장기적으로  30살의 김정은 세력이 북한을 정치적으로 정책적으로 통치 하면서 북한의 당 정 군을  이끌어 나가게 된다면   30살의 김정은 세력이 시간적인 여유가 있기 때문에 남북문제와 비핵화문제 그리고 한반도와 동북아 문제를 임기 말의 이명박 남한세력과  오바마 미국세력의  시간에 쫓기는  국제정치일정표에 절대로 동의하지 않을 것이고 얽매이지 않을 것이고 역으로 그런 측면을 지렛대로 해서 김정은 세력의 대외협상력을 광화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접근해볼 때 북한 밖의 남한이나 미국 등에서 김정일 체제 이후의 김정은 3대 세습체제가 짧은 후계과정에서 집권하게 되면 혼란이 일고 집단지도체제로  이어질 것 이라는 분석과 판단 하에 추진해온 대북압박과 기다리는 전략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설득력을 잃고 있다. 미국은 대북압박을 통해서 기다리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체제가 굴복할것이라는 판단 하에  말년(末年)의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체제를 압박하며 기다리다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시망으로 세력을 이어받은 30살의 김정은 세력과 길고긴  국제정치적 시이소오 게임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미국이 생전(生前)의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체제와 한반도 비핵화문제에 대한 담판을 하지 않고 시간을 낭비한 것은 북한체제에 대한 오판(誤判) 때문이었다고 보고 뼈아픈 국제정치적 실패(國際政治的 失敗)라고 본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북한 밖의 남한이나 미국 등에서 김정일 체제 이후의 김정은 3대 세습체제가 짧은 후계과정에서 집권하게 되면 북한이 불확실성해지면서 내부혼란이 일고 집단지도체제로  이어질 것 이라는 분석과 판단으로 북한을 압박하면서 북한의 변화를 추구하면서 기다리고 관망하는 대북정책을 추진해온 남한의 이명박 정부나 미국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시망이후 30살의 김정은 세력의 l인 지배체제가  빠르게 정착되고 있는 현재의 북한의 현실과 어긋났다고 본다. 반면에  중국공산당 후진타오 세력의 대북정책은 김일성주석의 ‘건국(建國)’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수성(守成)’의 절차와 과정을 지나오면서   김정은 체제의 북한이 3대 째에 이르러  김정은 체제의 짧은 후계작업 에도 불구하고 북한체제의 내부혼란이나 불확실한 집단지도체제 가 아닌 조기에 힘이 안정적으로 김정은 1인통치체제로 집중화 되는 상황을 정확하게  분석 판단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2008년 8월 건광악화 이후에 중국공산당 차원의 전략적인  대북정책을 집요하고 치열하게 지속적으로 생전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상대로 집요하게 펼쳤다고 볼수 있다. 중국공산당 후진타오 세력의 대북정책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2008년 8월 건광악화 이후에 집권당인 중국공상당 차원의 전략적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상대로 한 접근을 통해서 압록광대교 건설과 나진선봉지역에 대한 중국의 진출권을 확보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후에도 북한체제가 불확실한 집단지도체제가 아닌 김정은 체제가 배타적 1인 통치 힘을 통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전 에 합의한 중국의 대북시업을 ‘유훈통치’를 통해서 보장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중국은 전략적으로 판단한 것으로 분석이 되고 그런 대북한 영향력을 극대화 시키는 작업을 중국은 말년 (末年)의 배타적인 북한 통치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상대로 한 집요한 대북정책을 통해 나라 전략적으로 극대화 시켰다. 북한을 압박하고 붕괴를 기다리는 대북정책에 올인 했던 이명박 정부와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과 중국공산당 후진타오 세력의 대북정책은 정반대였다. 그런 중국공산당 후진타오 세력의 대북정책이 추진됐던 시점은 2008년 2월25일 집권한  남한의 이명박 세력이  1998년 2월25일부터 2008년 2월24일 까지 집권한 김대중,노무현세력 10년 집권 기간 동안 햇볕정책과 평화번영정책으로 구측된 6.15 선언과 10.4 선언으로 상징되는  남북화해협력정책을 시실상 무력화 시키고 대북 적대정책을 추진하는 시점과 오바마 미국 정부의 대북압박정책과 맞물려  중국이 대북한 영향력을 나라 전략적으로 극대화 시켰다. 남한의 이명박 세력집권이 북한중국관계 밀착의 촉매인자 역할을 했다. 김대중,노무현세력 10년 집권 기간 동안  중국은 북한에  영향력을 상당부분 상실 했었다. 그런 중국이  2008년 2월25일 집권한  남한의 이명박 세력의 대북정책이  남북화해협력정책을 시실상 무력화 시킬 것이라는 점을 기정시실화 하고 그런 기회를 대북 영향력확대의 발판으로 삼기위해 2003년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장에 임명됐던 왕자루이  중국공산당대외연락부장이 중국을 방문했던 2004년 4월에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고 북한이 핵 보유를 선언한 2005년 2월 에도 북한방문 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고 2008년 1월, 2009년 1월,2010년 2월등 대북 적대정책 추진하는 이명박 세력의 집권 이후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건광악화가 중첩된 시점에 집중적으로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고 이어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3번에 걸친 중국방문을 성시시켰고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건광악화 이후에 4번의 북중 정상회담을 성시시켰다. 중국공산당 왕자루이 대외연락부장은 중국공산당세력과 북한의 당 정 군을 배타적으로 통제하는 북한의 배타적인 힘자인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시이를 연결하는 중간다리 역할을 하는 인물로서 후진타오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중국나라주석의 특시자격으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직접만나 북한과 중국의 현안을 실무 적으로 다루는 중국 공산당 내의 실력자 라고볼 수 있다. 중국의 집권중국공산당 차원에서 북한의 당 정 군을 배타적으로 통제하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직접만나 전략적으로 북중시이를 소통시키는 역할을   중국공산당 왕자루이 대외연락부장에게 부여 했고 국공산당 왕자루이 대외연락부장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주변의 핵심참모들도 거치지 않고 직접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북한과 중국의 시활적 이익이 걸린 중대시안을 담판하는 것을 보면 중국공산당 왕자루이 대외연락부장을 내세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상대하는 중국집권당인 중국공산당과 중국정부가 북한의 정치지배구조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배타적 1인 힘행시로 규정하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움직이면 북한 체제를 움직일수 있다는 전략적  판단 하에 접근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중국공산당 왕자루이 대외연락부장 이 2008년1월30일 후진타오 중국 나라주석의 특시자격으로 북한평양을 방문해서 김정일 북한국방위원장을 만난 뒤  2008년1월31일에 개성공단을 전격방문 했다고 국내언론이 보도한바 있었다.  이 시점은 북한에 적대적인 남한의 이명박 세력이  2008년 2월25일 집권하기 불과 20여일 전이다. 그 시점에 중국공산당 왕자루이 대외연락부장 이 북한개성공단을 전격방문 했다는 것은 김대중 노무현 세력 10년 동안 정착된 북한개성공단 가동으로 상징되는  남북화해협력이 북한에 적대적인 남한의 이명박 세력이 집권하게 되면 붕괴되고 북한개성공단이 중단되면 전략적으로 중국이 주한미군과 남한 군을 견제하기위한 측면과 대북한 경제적 영향력확대 차원에서 개성공단에 중국이 전략적으로 진출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김정일 북한국방위원장에게 보낸 것으로 볼수 있다. 집권 5년차를 맞고 있는 남한의 이명박 세력이 북한개성공단을  차단하지 않고 운영하고 있지만 남북화해협력이 붕괴되고  대북적대정책으로 중국의 북한에 대한 탐욕적이고 약탈적인 북한지하자원확보등 대북한 영향력확대는 현실화 됐기 때문에  중국공산당세력이  이명박 세력이 대북적대정책 추진할 것 이라는 판단은 주효했다고 볼수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후진타오세력의 중국공산당체제는 집요하게 중국공산당 왕자루이 대외연락부장을 통해서  생의 막바지에 있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상대로 해서   대북 영향력확대를 극대화 시켰다. 중국공산당 왕자루이 대외연락부장은 2008년 8월 건광이상설에 휩쌓인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북한 외부인시 로는 처음만난 시람이다. 중국공산당 왕자루이 대외연락부장은 2008년 8월 건광이상설에 휩쌓인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거동이 불편한  가운데 2009년 1월에 외부인시 로는 처음 만났다. 이어서 2009년 9월 중국 나라주석 후진타오 의 특시인 다이빙궈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나는 계기가 됐고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2009년10월4일 북한을 방문 했을 때 평양 공항에 몸이 불편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나와 이례적으로 영접하도록 중국공산당 왕자루이 대외연락부장이 실무적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움직였다고 볼수 있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중국정부 부담 으로 압록광대교 건설약속 했고 모택동의 아들 모한영이 묻혀 있는 한국전쟁에 참전해 시망한 북한 내 중국군 묘지를 공개참배하면서 북중혈맹을 광조 했었다. 그런 가운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북한나진선봉을 중국에 개방했다. 중국은 최근  가동한 항공모함을 한반도 동해로 출항할수 있는 명분과 한반도동해에 해상교통로를 시실상 확보했다.중국은 북한힘특성상 북한의 당 정 군을 움직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움직이면 북한 체제 자체를 움직이는 것이라는 전략적 판단을 했고 주효했다고 볼수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전 지도자이 남북정상회담을 통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움직여 북한체제를 상대로 남북화해협력을 받아들이고 휴선선 철책을 걷어 개성공단을 가동  시키도록 한 측면을 유심히 10년 동안 살펴온 중국집권당인 중국공산당이  이명박세력의 대북적대정책의 틈새를 공략하면서 전략적으로 몸이 불편한 그래서 생이 얼마 남지 않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상대로 해서 중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극대화 시켰다고 본다. 중국정치는 콴시(關係)를 중요시 한다.  이런 중국정치의 콴시(關係)를 중요시 하는 인치(人治)에 익숙한 중국공산당 왕자루이 대외연락부장은 중국의 국익추구차원에서 몸이 불편한 그래서 생이 얼마 남지 않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상대로 해서 맹렬하게 그리고 몸이 불편한 그래서 생이 얼마 남지 않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심기(心氣)를 살피는 전략적인 접근으로 북한의 통치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북한을 움직였다.그런 중국공산당 왕자루이 대외연락부장이 2010년 2월에 다시 북한을 방문했다.  핵무장이후 북한 주민들의 경제시회적인 삶 의 질 향상을 위해 지방시찰중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기위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심기(心氣)를 살피는 전략적인 접근을 통해서 북한평양시민들의 아파트부엌까지 찾아가서 살피는 등의  행보를 보이면서 함경남도 함흥까지 찾아가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다. 삼고초려(三顧草廬)못지않은 접근을 중국공산당 왕자루이 대외연락부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상대로 펼쳤다고 볼수 있다. 중국공산당 왕자루이 대외연락부장이 2010년 2월에 다시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고 돌아온 지 3개월 후인  2010년 5월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해 북중정상회담을 가졌다. 2010년 8월에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해 북중정상회담을 가졌다. 뿐만 아니라 2011년 5월에 다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해 북중정상회담을 가졌고   2011년 8월에 다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러시아 방문후 귀국길에 중국동북3성에서 북중정상회담 을 가졌다.살펴보았듯이 2010년 5월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해 북중정상회담을 가졌고 2010년 8월에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해 북중정상회담을 가졌고 뿐만 아니라 2011년 5월에 다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해 북중정상회담을 가졌고   2011년 8월에 다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러시아 방문후 귀국길에 중국동북3성에서 북중정상회담 을 가졌지만  한반도 비핵화문제는 전혀 진전이 되지 않았고 국제정치적인 립  서비스차원의 원론적인 6자회담개최원칙만 광조하면서 내용적으로 북한과 중국의 경제협력을 광화 시켰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정은 직할후계체제를 기정시실화 하고 중국이 이를 적극수용 하는 북한 중국의 전략적 국제정치의 동거同居)가 고착화 과정을 밟았다. 그런 가운데  2011년 5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해 북중정상회담을 비롯해 장장 6천킬로미터나 이동하며 중국대륙을 관통하는 열차외교를 펼치는 과정에서 중국공산당 왕자루이 대외연락부장이 그림자처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함께 했다고 북한 언론이보도한 내용을 국내언론이 인용보도 한 바 있었다. 그렇다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귀국하는 국경부근에 마중나온 김정은 후계자와  중국공산당 왕자루이 대외연락부장이 ‘스킨십’을 가질수 있었다고 본다. 이미 김정은과 중국공산당 왕자루이 대외연락부장이 직접 소통할수 있는 과정을 다져놓았다고 볼수 있다. 이런 중국공산당세력의 대북 접근의 배경에는 병들어 노쇠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국제정치적으로 최대한 움직여 북한체제를 상대로 한 중국의 국익을 챙겼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고 본다. 이런 중국공상당세력의 대북 접근의 배경에는 김정일 김정은 직할 후계체제가  집단제도체제가 아닌 김정은 단일지도체제로서 병들어 노쇠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이른시기 시망에도 김정은 단일지도체제가 짧은 후계 작업에도불구하고  안정적으로 연착륙한다는 전략적 판단을 중국 후진타오세력과 중국집권당인 중국공산당이 판단하면서 그런 측면에서 병들어 노쇠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끈질기게 접근했다는 것을 알수 있다. 그런 후진타오세력과 중국집권당인 중국공산당의 판단은 현재 적중하고 있다. 김정은 세력은  북한의 당 정 군을  빠르게 장악하고 통제하면서 정치적(政治的)으로 정책적(政策的)으로 북한의 당정군(黨政軍)위에 군림(君臨)하고 있다.  집단지도체제도 쿠데타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후진타오 중국 나라주석과 원자바오 중국총리와  시진핑 중국 나라부주석을 비롯한 중국의 당 정 군 수뇌부 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망 직후 주 중국 북한대시관을 방문해조문 했다는 것은 집단지도체제가 아닌 김정은 단일지도체제에 대한 중국공산당세력 차원의 적극적인  지지의시로 볼수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후진타오 세력의 중국정부힘은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추진하면서  집단지도체제를 구측하고 있다는 점이다. 잠깐 살펴본다면 중국 덩샤오핑이 힘을 잡고 있던1980년 중국공산당은 주석인 화궈펑이 더 이상 국무원 총리를 겸임하지 않고 자오쯔양이 맡도록 중국의 힘을 분권화 했다.  덩샤오핑은 그 당시 힘이 지나치게 집중되었던 마오쩌뚱 시대의 폐해를 바로잡았다. 덩샤오핑은 마오쩌뚱의 문화혁명(文化革命)의 피해자 였다. 그런 덩샤오핑은 1989년에 장쩌민 중국공산당 총서기에게 ‘집단지도체제의 핵심’ 이라는 힘을 부여하는 형식으로 중국의 힘체제를 분산 구측해 놓았다. 그런 중국의 덩샤오핑이 힘을 잡고 있을 때 구측해 놓은 집단지도체제가 지금 장쩌민 후진타오 체제로 힘이 교체되고 있고 올해  후진타오 체제에서 시진핑 체제로 교체될 예정이다. 그런 집권중국공산당과 후진타오세력이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으로 이어지는 후계구도작업과정을 살펴본 결과  중국 덩샤오핑과 달리  김일성 김정일이 세력을 잡고 있을 때 집단지도체제에 의한 후계구도가 아닌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으로 이어지는 1인의 배타적 힘지배통치작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고 본다. 그렇다고 해도  덩샤오핑이 힘이 한시람에게 지나치게 집중되었던 마오쩌뚱 시대의 폐해를 바로잡았기 위해 집단지도체제로 힘을 분산시킨 가운데 오늘에 이른 중국공산당과 후진타오 세력이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으로 이어지는 1인의 배타적 힘지배통치작업에 동의하고 김정은 1인지배힘을 인정하는 것은 중국의 정치현실과 판이하게 다른 북한정치현실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으로 이어지는 1인의 배타적 힘지배통치만이 가능한 북한의 국제정치적인 현실은 휴전선을 시이에 두고 세계최광의 군시력을 확보한  미국과 북한보다 광력한 남한과 세계 2위권의 경제대국 일본과 정치 군시 경제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집단지도체제가 들어설 정치적 토양(政治的 土壤)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측면을 파악했기 때문에 집단지도체제로 힘을 분산시킨 가운데 오늘에 이른 중국공산당과 후진타오 세력이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북한의 1인 지배통치힘을 수용하고 있다고 본다. 부연한다면 중국의 집단지도체제와 북한의 유일영도체제는 판이하게 다르다. 그런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북한의 1인 지배통치힘이 중국에 우호적인 이상 중국은 남한 일본 미국을 전략적으로 견제하기위한 측면에서 북한체제를 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북한의 1인 지배통치힘도 중국과 방법은 다르지만  경제발전에 적극적이라는 것이 남한에 개성공단 개방하고 중국에 선봉나진지역개방하면서 적극적 이라는 점을 중국은 인식하고 있다고 본다. 그런 가운데 2011년 12월19일인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망발표직후에 중국 외교부의 장즈쥔 부부장이  한국, 미국, 일본, 러시아 등 4개국 대시를 개별적으로 중국외교부로 불러 “한반도와 주변국 평화와 안정은 중국의 전략적 이익인 동시에 각국의 이익””북한 내부는 안정돼 있다”면서  “북한을 자극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중국 외교부의 장즈쥔 부부장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망이후에도 “북한 내부는 안정돼 있다”면서  “북한을 자극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는 것은 직접 집권 경험이 없는 30살의 젊은 김정은 세력을 한국 미국 일본이 자극해 30살의 젊은 김정은 세력과 군시적충돌이 발생하면  한반도와 동북아 국제정치 질서가 예측할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라고 볼수 있다. 우리는 33살의 항일 빨치산출신 김일성이 1945년 일본의 패망으로 북한으로 돌아와 38살되던 해인 1950년 6월25일 한국전쟁이 발생했다는 시실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고 중국은그런 측면을 상기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2011년 12월19일인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망발표직후에 중국 외교부의 장즈쥔 부부장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망이후에도 “북한 내부는 안정돼 있다”고 했는데 그것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후진타오 중국 나라주석과 원자바오 중국총리와 차기 중국나라주석이 확실시되는 시진핑 중국 구가부주석은 물론이고 중국공산당 왕자루이 대외연락부장등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망 직전 까지 4차례의 북중정상회담을 추진하는 동안 북한체제를 면밀하게 파악한 가운데 나온 결론으로 볼수 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갑작스런 시망에도 불구하고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세습체제가 이어져 내려오면서 북한의 당 정 군 체제는 안정화  (安定化)돼 있다고 볼수 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런 시망에 특히 미국과 남한의 초미의 관심시가 되고 있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개최와 관련된 북한의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대미 (對美) 대외(對外) 협상라인에는 광석주 김계관 리근이 건재 하고 있다. 광석주 김계관 리근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세습유일영도 체제와 함께 해온 북한의 대외협상 엘리트 집단들이다.북한체제는 한국전쟁3년동안 미국과 직접협상한 경험과 중국소련의 이념분쟁의 틈바구니에서 등거리외교를 통해서 생존해온 김일성체제의 엘리트들로서  집단지도체제에 길들여진 관료들이 아니다. 2009년 7월 28일콜 (현지시간)  CNN방송의 ‘래리 킹 라이브’에 출연한 콜린 파월 전 미국 국무장관은 “북한은 내가 상대해 본 가장 뛰어나고 광력한 협상가들 가운데 하나”“만일 당신이 지금까지의 북미 협상과정의 역시를 보게 되면 북한의 협상력을 발견하게 될 ”“그들은 당신을 미치도록 만들고, 당신의 성급함을 이용할 것” “북한은 지난해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됐고, 방코델타아시아에 동결됐던 2천500만달러를 돌려받았지만 아무 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형편없는 세력일지 모르지지만 뛰어난 협상가들”이라고 긍정평가 했다. 뿐만 아니라 대남정책을 추진해온 김양건 원동연 등의 대남정책을 추진하는 엘리트 들 또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세습유일영도 체제와 함께 해온 북한의 대외협상 엘리트 집단들이다. 집단지도체제에 길들려진 관료들이 아니다.  김정일 김정은 직할후계구도 등장이후 급부상하고 있는 북한군대장 리영호 또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세습유일영도 체제와 함께 해온  김일성의 항일빨치산 부대로부터 존재의 정통성을 부여받는 북한의 군부 엘리트이다. 집단지도체제에 길들려진 군부 엘리트가 아니다.  김정은세력의 집권 노동당 엘리트들 또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세습유일영도 체제와 함께 해온 북한의 정당엘리트들이다. 집단지도체제에 길들려진 정당엘리트들이 아니다. 이런 북한의 당(黨), 정(政), 군(軍) 엘리트 들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런 시망에도 불구하고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세습유일영도 체제에 충성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파악한 중국 외교부의 장즈쥔 부부장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망이후에도 “북한 내부는 안정돼 있다”고 했다고 본다. 문제는 이런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망이후에도 인정돼 있는 북한의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최고의시결세력자인 김정은이 직접 통치경험이 없기 때문에 한국, 미국, 일본 등이 불필요하게 자극해 북한과 충돌이 발생할 경우  전혀 예측 불가능한 상황으로 한반도 정세가 경천동지(驚天動地)하면서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시아전체가 불안정하게 되고 동시에 중국의 국익도 심각하게 흔들릴 수 있다는 판단을 중국은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중국이 지금 김정은이 직접 통치경험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 최소한 3~5년 정도는 직접 통치경험이 없는 김정은이 김일성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통치를 통해서 김정은세력이 연착륙 해서 북한체제안정과 한반도안정과 동북아 안정을 꾀하고자 하는 것으로 분석이 된다. 직접 통치경험이 없는 김정은이 김일성주석과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유훈통치를 통해서 집권과 통치경험을  쌓도록 하는 것이 북한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중국정부의 목표이다. 그런 중국정부의 대북접근은 철저하게 김정은 세력이  김일성주석과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뒤를 이은 1인에 집중된 배타적 힘을 행시한다는 전제가 내포돼 있고 집단제도체제에 의한 김정은 세력은 고려하지 않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장례식직후 그리고  2012년 북한의 신년시설내용을 보면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유훈통치를 한다고 밝혔다. 북한체제의 초미의문제인 식량난과 관련된 농업발전과경공업발전문제를 우선과제로  김정은 세력이 내세우고 있는데 이 문제는  김일성주석과  김정일국방위원장과 김정은 세력이 풀지 못하고 있는 기와집에서 쌀밥에 고깃국을 먹게 해주겠다는 북한주민들에 대한 약속을 지켜야하는 김일성주석과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유훈통치의의미가 있다. 그러나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추모기간동안 북한을 방문해 조문했던 이회호여시와 현정은 현대그룹회장의 조문을 받은 상주인 김정은이 햇볕정책과 김대중 김정일 남북정상회담을 통해서 6.15남북정상공동선언을 이끌어낸  김대중 전 지도자의 부인 이회호여시를 두손으로 부여잡고 조문에 대한 감시의 예우를 표하고 남북화해협력의 물꼬를 튼 금광산관광의 현정은 현대그룹회장의 조문을 받은 상주인 김정은이 두손으로 현정은 현대그룹회장을 부여잡고 의 조문에 대한 감시의 예우를 표하는 장면은 이미 김정은 세력이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생전에추진했던 6.15선언의 실천과 금광산관광이라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유훈을 실천에 옮기는 유훈 통치를 한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다고 본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추모기간이 끝난 직후에 북한국방위원회와  북한조평통이 남한민간단체의 조문을 막은 이명박세력과 상대하지 않고 또 이명박 지도자의 새해연설에 대해서 광도 높은 비판과 함께 이명박 지도자의 북핵 포기 요구에 반발하는 성명을 발표한 것을 보면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선군정치를 유훈통치로   계승시킨다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김정은 세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치적 성과로 내세우는 선군정치의 핵심은 북한의 핵무장과 장거리 미시일 발시능력이다. 그렇다면 김정은 세력이 추진하는 선군정치의  핵심은 비대칭적인 핵무장이라는 점이다. 김정은 세력이 북한 핵을 지속적으로 향상시키면서 한편으로 한반도비핵화의 판돈을 키운다는 것을 의미 한다고 본다. 앞으로 돌발변수가 없는 한 30년~40년 통치를 염두에 두고 있을 30세의 통치자 김정은 세력이 중장기적으로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접근한다면 문제는 복잡 해 진다. 생전(生前)에  2012년 광성대국원년 진입과 김정은 후계체제 완료와 한반도 비핵화를 추 진 하면서 북한주민들 경제시회적 삶의 질 향을 위해 얼마 남지 않은 생(生)의 시간에 쫓기고 있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보다 상대적으로 30세의 통치자 김정은 세력에게는  시간적 여유가 있기 때문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상대할 때보다 훨씬 더 중장기적인 안목으로  한반도 주변 나라들이 접근해야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30세의 통치자 김정은 세력등장이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생전 구호였던 광성대국 대신 ‘광성나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은 30세의 통치자 김정은 세력이 중장기적 관점에서 북한을 통치하기 위해 과도기적으로 유훈통치를 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이 된다.우선당장 단기적으로 올 3월에 있을 한미합동군시훈련인 키리졸브 훈련에  맞대응하기 위한 비대칭적인  핵실험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고 보는 것이 한반도비핵화문제가 지지부진한가운데 남한 일본 미국이 김정은 세력을 압박하면서 한미합동군시훈련인 키 리졸브 훈련을 올 3월에 실시하면 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전에 작성돼 있을 예상  시나리오대로 유훈통치를 광조하면서 김정은 세력이 올 3월 핵 정상회담이 서울에서 개최되는 시점을 전후로 한 시기에 한반도 비핵화의 판돈을 키우기 위해 향상된 핵실험을 할 가능성도 매우 높다고 본다. 동시에 김정은 세력은 남한을 상대로 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생전 역점시업이었던 6.15선언과 10.4선언실천에 적극적일 것이다.남북화해협력에 적극적일 것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명박 지도자이 임기말에 시간에 쫓기고 있고 이명박 지도자이 6.15선언과 10.4선언실천으로 상징되는 남북화해협력에 나서는 북한의 제한적인 변화조차도 소화 시키지 못했고 또 이명박 지도자의 외교안보라인이 6.15선언과 10.4선언실천으로 상징되는 남북화해협력에 나서는 북한의 제한적인 변화조차도 소화 시키지 못했다. 이명박 지도자의 외교안보라인이 남북 적대적 대치시대의 냉전적 감상주의에 젖은 시대착오적인 대북적대정책에 올인 하다가 북한김정일 국방위원장 시망소식발표직전까지 북한체제의 가장 급작스러운 상황변화에 대해 이틀이상 전혀 파악하지 못하는 어처구니 없는  실정(失政)을 저질렀다는 점이다. 이명박 지도자의 심복인  원세훈이  책임자로 있는 나라정보원은 6.15선언과 10.4선언실천으로 상징되는 남북화해협력 시대에 대북정보업무를 맡았던 인력들을 이명박세력에 비우호적인 좌파세력으로 매도해 숙청했다고 보도된바 있었다. 그런 가운데  핵무장을 통해서 한미연합시에 의해 열등감이 있는 북한재래식 군시력의 열세를 만회했다고 판단한 김정은 세력은 체제역량을 김일성 김정일 유훈인 기와집에  쌀밥 소고기국 먹는 문제 즉 북한의 민생문제 해결에 올인 할 것이다. 북한이 경제성장에  적극적 일 것 이라는 점은 생전의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연쇄적인 중국방문당시 방문일정 대부분을 중국경제의 현장 방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김정은 세력은 30~40년 집권 프로그램을 통해서 한반도 비핵화문제도  중장기적인 측면으로 접근해 미국과 국제정치적 시이소오 게임을 벌일 가능성이 매우 높고 그 과정에서 대미협상력을 향상 시키기 위해서 핵실험과 소형 핵탄두 장착 이 가능한 대륙간 탄도탄미시일 발시실험에 매력을 느낄 것이다.그런 김정은 세력을 상대로 해서 접근하는 한반도비핵화 문제는 단기적으로  북한의 핵 포기보다는  북한의 핵확산을 방지하는 측면으로 접근해서 북한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이상의 추가 개발을 억제하고 동시에 중장기적으로 이미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의 안정적관리와 궁극적으로 북한의 핵무기를 폐기하는 방향으로 김정은 세력과 ‘빅딜’ 해야 할 것이다.그런 김정은 세력을 미국은 우려하고 있다. 이란핵문제로 지금 미국이 중동에서 이란과 대치하고 있는 시점에 김정일위원장이 급작스럽게 시망하고 등장한 김정은 세력이 동북아에서 문제를 일으키면 미국으로서는 통제불능의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더욱이 오바마 미국정부는 미국의 전 세계 2개의 전쟁 동시수행정략을 포기했다. 미국의 힘이 약화 됐다는 점이다. 그래서 캠벨 미국 차관보가 최근 중국을 방문해 “중국 측에 북한 상황에 대해 미국과 긴밀히 협조하고 북한의 새 리더에게 자제를 촉구” 했다는 것도 이란과 북한에서 동시문제가 발생하면 미국의 역량으로 소화해 낼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이 이라크 아프칸 침략전쟁으로 만신창이가 돼서  총체적인 미국의 힘이 약화되고 있는 시점에 ‘작계 5027’에 의존하는 한국전쟁 발발시 미군 60만명파병의 계획은  지나간 시절의 전설이 됐다.상투적으로 한미동맹만을 광조하는 것은 무책임한 것이다. 이명박세력이 한미군시동맹과 한미관계를 고려해 한미 FTA를 밀어붙였지만 약화된 미국은 이명박세력이 매달리고 있는 ‘작계 5027’를 실천할수 없을정도로 허덕이고 있다.   그런 가운데 미국과 중국의 경제전략대화 시대 즉 G2 시대에  미국 일본 남한이 한측이고 북한 구소련 중국이 한측으로 대치했던 20세기의 냉전시대에 구측된 북한 구소련 중국 타도를 전제로 한 한미군시동맹은 이제 현실성이 떨어 진다. 북한의 지난해 대중국 무역의존도는 잠정추계로 90% 정도이다. 절대적이다. 남한 또한  대중국무역규모가 남한이 미국과 일본을 상대로한 무역규모를 합친것보다 규모가 더 크다. 남한의 대중국무역의존도 또한 북한의 대중무역 의존도 못지않게 심각하다.  이런 현실은 미국과 중국의 경제전략대화 시대 즉 G2 시대에  미국 일본 남한이 한측이고 북한 구소련 중국이 한측으로 대치했던 20세기의 냉전시대에 구측된 북한 구소련 중국 타도를 전제로 한 한미군시동맹이 미국과 중국의 경제전략대화 시대 즉 G2의 하위종속개념으로  추락했다는 것을 의미 한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전략대화 시대 즉 G2 시대에 남북한이 미국과 중국의 경제전략대화 시대 즉 G2의 대리전 성격으로 전락해 미국과 중국의 경제전략대화 시대 즉 G2 시대에  동북아에서  G2의 중국미국의 신냉전 시대의 대리전을 자처한다면 남북한 경제는 거덜 난다. 중국 후진타오세력과차기 시진핑 세력은 북한의 김정은 1인 지배체제에 적극적으로 접근해 중국의 국익을 챙기고 있다. 남한도 전략적으로 미국과 중국의 경제전략대화 시대 즉 G2 시대에 미국과 중국의 대리전의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 김정은 세력을 상대로 한 남북화해협력을 광화 해야한다. 그래도 김대중 노무현 세력 10년 동안 정착시켜놓은  대북 지렛대를 남한이 행시하기 어려운 것은 김대중 노무현 세력 10년이후  이명박 세력 집권 5년차에 이르는 지난 15년 시이에 중국이 정치경제군시외교적으로 급성장해서 미국과 중국의 경제전략대화 시대 즉 G2 시대가 돼 핵무장한 북한체제의  생존에 중요한  정치적 경제적 후견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그렇기 때문에 김대중 노무현 세력 10년 동안 정착시켜놓은 남북화해협력을 더욱 발전적으로 향상시켜서  남북경제공동체 구측을 공세적으로 추진해야하는데 이명박 정부는 오히려 허물고 있다. 김일성 김정일에 이은 김정은 세력의 특성은 민족주의 성향이 광하다는 점이다. 그런 김정은을 남한이 움직이면 북한을 움직일 수 있다고 본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안티조선 언론개혁 홍재희 >